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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 장승업― 작가적 위상 정립과 평가의 궤적

Oh Won Jang, Seung-eob ― Establishment of Status as an Artist, and the Trajectory of Evaluation

초록/요약

본 연구는 조선말기 화단의 大尾를 마무리하는 화가 吾園 張承業(1843~1897)의 畵名이 그의 사후 100여 년간 어떠한 방식으로 구축, 평가되었는지 면밀히 고찰해 보는데 그 목적을 둔다. 장승업은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음에도, 天才를 발휘해 산수, 화조, 영모, 인물, 기명절지까지 모든 장르에 뛰어났던 화가이며, 안중식・조석진에게 화풍적 영향을 미쳐, 한국 근대 화단의 화맥을 형성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에 본고는 장승업에 대한 근현대기 문헌자료들을 검토하고, 장승업에 대한 인식, 작품 평가 및 변화의 제 양상에 주목했다. 먼저 仁同 張氏라는 큰 틀 아래서, 장승업은 역관들의 후원에 힘입어 화가로 성장한다. 장지연, 최남선, 오세창과 같은 지지자들에 의해 화가로서의 생애가 처음 기록되었으며, 김용준에 의해 상술되며 재발견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예술적 기질이 충만한 천재화가로서의 신화가 반복하여 생산되는 가운데, 오세창의 안목으로 컬렉션의 기반을 다졌던 간송미술관에서 수차례 특별전이 개최되면서 대가로서의 명성을 더욱 굳혔음을 관찰했다. 다만, 장승업에 대한 회화사적 평가는 많은 변화를 거쳤음을 목도할 수 있다. 오세창을 필두로 근대 초기의 기록들은 기명절지화를 주문에 대응하는 수응용 화목으로 보고, 정교하게 묘사한 산수와 인물에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점차 정선과 김홍도의 ‘조선적’ 화풍에 비견되면서 장승업의 특장이었던 산수와 고사인물도는 모화적, 전통 회귀적이며 기교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이에 장승업의 화가로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그의 작품에 대한 엇갈린 품평이 존재하게 된다. 중국풍의 정치한 산수와 호방한 기명절지로 대표되는 화풍과 평가기준 변화의 문제뿐만 아니라, 口傳에 구전을 덧입은 생애사, 작품의 평가를 초월한 大家의 畵名, 好酒와 奇行・代理 落款에 의해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진위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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