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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장의 하레딤 연구

초록/요약

본 논문은 이사야 66장의 ‘하레딤’에 초점을 맞추어 제3이사야의 갈등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핸슨의 연구 이후, 제3이사야의 저자공동체는 성전재건을 주도한 사독계 제사장 집단과 갈등관계에 있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제2이사야가 페르시아 시대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리라는 기대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어지는 제3이사야가 페르시아가 후원하는 성전재건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페르시아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페르시아의 식민지 정책에 동조하면서 예루살렘에서 유대 사회를 회복하고자 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 점에서 제3이사야는 에스라-느헤미야와 마찬가지로 골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볼 수 있다. 골라 공동체는 종교적으로 혼합주의 제의에 반대했고 정치적으로 페르시아 정책에 부합했다. 학자들은 이사야 66장과 에스라 9-10장에 등장하는 하레딤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두 텍스트에 나타나는 하레딤의 다른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사야 66장에서 하레딤은 형제들로부터 쫓겨났다, 그러나 에스라 9-10장의 하레딤은 이방인 아내와 그 자녀를 유대 공동체로부터 축출하였다. 이 두 본문에서 하레딤의 사회적 역할은 뚜렷한 대조를 이루지만, 블렌킨소프와 같은 학자는 이 두 하레딤을 동일집단으로 간주하였다. 단순히 하레딤이라는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고 해서, 뚜렷이 다른 사회적 역할이 제시되는 것을 간과하고 동일집단으로 분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왜 동일한 이름의 집단이 전혀 다른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본 논문에서 하레딤의 대조적인 역할의 원인은 포로들의 사회적 지위가 달랐던 것에서 찾아볼 수 있고, 더 중요하게 이들의 이방인에 대한 태도, 특히 그들을 성전 예배에 포함할지 여부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음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포로후기 유다 사회에서 하레딤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그 결과 하레딤이 내부적으로 분열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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